
소버린AI(Sovereign AI)는 특정 국가 또는 주권체가 자국의 가치, 법률, 제도, 문화에 기반하여 독자적으로 인공지능을 개발·통제·운영하는 체계를 말한다. 이는 기술주권 확보, 데이터 주권 강화, 외부 의존도 최소화를 목표로 한다.
‘Sovereign AI’라는 용어에서 ‘Sovereign’은 영어로 ‘주권을 가진’, ‘최고 권위의’라는 뜻을 가지며, 해당 단어는 라틴어 ‘superanus'(최고의, 위에 있는)에서 파생되었다. 이는 AI 기술이 독립적으로 특정 국가나 정치적 단위의 통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개념을 강조한다. AI는 기본적으로 국경 없는 기술이지만, ‘소버린 AI’는 AI의 개발 및 운영이 각국의 정치적·법제적·문화적 독립성과 일치해야 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이 개념은 단순한 기술 독립을 넘어 인공지능이 특정 외국 기업이나 국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도록 하려는 의도와 연관된다.
소버린AI 개념은 특히 각국의 디지털 주권 요구가 증가함에 따라 대두되었다. 데이터가 21세기의 석유라고 불리우는 현실에서, 무차별하게 국외로 빠져나가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AI가 개발되는 것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로 인식된다. 특히 유럽연합에서는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도입 이후 자국 내 AI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중국은 AI를 포함한 디지털 기술 전반에 대해 높은 수준의 주권적 통제 전략을 활용하고 있으며, 미국은 자국 AI 기술의 해외 확산 및 지배력 유지를 위해 글로벌 거버넌스를 지향하면서도 국내 기업 위주로 통제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소버린AI는 통치와 기술이 교차하는 핵심 영역이 되었다.
한 예로, 독일은 “GAIA-X 프로젝트”를 통해 유럽 내에서 독립적 데이터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주권적 AI 시스템을 개발하고자 했다. 프랑스와 함께 이를 추진하며, 유럽연합이 미국과 중국의 초거대 AI 모델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의 가치에 부합하는 AI 개발을 가능하게 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이는 기존의 클라우드 및 AI 플랫폼이 아마존, 구글, 바이두 등의 외국계 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 대한 대응이다. 이처럼 국가 차원의 AI 기술 주권 확보 시도는 소버린AI라는 개념의 주요 일화로 볼 수 있다.
최근의 기술 및 학술 동향에서도 이 개념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예컨대, Floridi, L., & Chiriatti, M. (2023)의 논문 “Sovereign Artificial Intelligence: Challenges and Responsibilities” (AI & Society)에서는 소버린AI가 기술적 문제뿐 아니라 윤리적·법적 책임 문제와도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국가 단위 AI 통제의 명확한 책임성(Explainability and Accountability) 확보가 선행조건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최근 2024년 3월호 IEEE Spectrum 특집기사인 “The New AI Cold War”에서는, 미국과 중국 간의 AI 지배권 경쟁에서 각국이 소버린AI 전략을 통해 AI 생태계 주도권을 잡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을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카이스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이 자체 AI 모델 및 인프라 개발을 통해 국가 주도 AI 체계를 구축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소버린AI를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은 다양하다. 첫째, 정부기관은 공공부문에서 적용될 AI 시스템을 자국산 기술로 설계함으로써 실질적인 데이터 보안 강화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의료, 국방, 치안, 세무 등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시스템에서는 외국계 AI 플랫폼 사용 시 데이터 주권이 침해될 위험이 있다. 둘째, 산업계는 자국의 법·환경·언어 등에 맞게 최적화된 AI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외부 제재를 방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국가가 AI 수출 통제를 적용했을 때에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술 체계는 경제안보에 있어 핵심 자산이 된다. 셋째, 학계 및 연구계에서는 독립적 AI 생태계 내에서 윤리적 AI 설계와 투명한 알고리즘 원칙 등을 실현할 수 있어 AI 공공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
소버린AI 개념은 단순한 기술적 접근을 넘어서 사회적 신뢰와 정치적 정당성을 연결짓는 구조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특히, 글로벌 거버넌스가 갈수록 파편화되어가는 시기에 AI가 특정 국가 또는 기업의 목적에 봉사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사용자나 시민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 초기 단계부터 해당 국가의 철학·가치·규범을 반영해야 한다. 이는 다만 규제를 위한 규제가 아니라 AI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사회적 위험을 최소화하고, 동시에 기술 혁신을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한 주체적 대응 전략이다. 미래의 AI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거버넌스 구조에서도 ‘어디서 온 기술인가’보다 ‘어떻게 설계되고 관리되었는가’가 핵심이 될 것이며, 그 중심 개념이 바로 소버린AI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