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HLEG(European Union High-Level Expert Group)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특정 정책 분야에서 전략적 방향성과 권고를 도출하기 위해 구성하는 고위급 전문가 자문기구로, 전문가 집단의 독립적인 견해를 토대로 중장기 정책 로드맵을 마련하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EU HLEG’이라는 용어에서 ‘EU’는 ‘European Union’의 약어로 유럽의 정치·경제 공동체를 의미하며, ‘HLEG’는 ‘High-Level Expert Group’의 약어이다. 여기서 ‘High-Level’은 정책 조정 및 전략 수립 능력을 갖춘 상위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뜻하며, ‘Expert’는 특정 분야의 전문적 지식과 경륜을 지닌 인물을, ‘Group’은 집단 또는 위원회를 나타낸다. ‘Expert’는 라틴어 ‘expertus’에서 유래하였으며, ‘경험해본 자’를 의미한다. 전체적으로 이 용어는 특정 분야에 정통한 유럽 고위급 전문가들의 집단을 가리키고, 이들의 조언은 유럽 정책 방향을 결정짓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EU HLEG의 설립 역사는 유럽연합의 정책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행정 내 전문가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시작되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EU는 환경, 금융, 산업, 디지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자 전문가 의견을 체계적으로 수렴할 필요성을 절감했으며, 이에 따라 각 정책 영역별로 HLEG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2006년 설립된 ‘Nanotechnologies HLEG’은 유럽 나노기술 발전 로드맵을 수립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고, 이후 지속가능금융, AI 윤리 등 점차 다변화된 주제로 확대되었다.
EU HLEG는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일화를 남겼다. 특히 2018년 발표된 ‘AI의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도출한 ‘AI HLEG’는 유럽 중심의 AI 규제윤리 모델을 제시하며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산업계와 시민사회의 상반된 이해관계를 절충하여 투명성, 책임성, 인권 중심의 원칙들을 담아낸 점은 국제적인 이정표가 되었다. 당시 구글 및 IBM, 유럽 데이터보호 이사회까지 참여한 바 있어, 학계뿐만 아니라 업계로부터도 실질적 영향력을 인정받았다.
최근 기사 중 2023년 11월 Politico EU에서 보도된 바에 따르면, ‘AI HLEG’의 권고사항들이 2023년 유럽 AI 법안 기조 형성에 직결되었으며, EU 위원회는 그간의 전문가그룹 성과를 기반으로 앞으로도 고위급 그룹 중심의 정책 개발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민관학 협력을 제도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거버넌스 틀로 주목받고 있다.
학술적인 차원에서도 EU HLEG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Floridi, L., Cowls, J., Beltrametti, M., Chatila, R., Chazerand, P., Dignum, V., … & Vayena, E. (2018). AI4People—An ethical framework for a good AI society: Opportunities, risks, principles, and recommendations. Minds and Machines, 28(4), 689-707. 해당 논문은 AI 윤리를 다룬 AI HLEG 보고서 기반을 마련했으며, 전문가집단의 윤리적 틀 마련 역할을 학술차원에서 정당화하였다. 또한 Broussard(2021)의 연구에 따르면, 전문가 그룹의 구성 방식의 투명성과 다양성이 정책의 수용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임을 분석하였다.
EU HLEG는 실용적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예컨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Sustainable Finance HLEG’는 친환경 투자의 분류체계(taxonomy)를 만들고, ESG 기준의 정립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유럽 금융기관들에게 자금 흐름을 녹색경제로 유도하라는 권고를 제공하였다. 이는 공공정책보다 민간 투자를 규제하는 데 있어 훨씬 효과적인 전략이 되었고, 실천적 거버넌스로도 기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EU HLEG를 통한 정책 개발 메커니즘은 국가별 정부에도 지속가능한 거버넌스 모델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시사점을 가진다. 특히 한국과 같은 중간 수준의 정책조정 체계를 갖춘 국가에서 탈관료적(hybrid governance) 구조를 통해 전문가 주도형 의사결정 모델을 수용할 경우, 보다 수평적이며 전문성이 보장된 정책 수립이 가능해질 것이다. 다만, EU HLEG의 기능이 비판 없이 받아들여질 수는 없으며, ‘선출되지 않은 간접 권력’이라는 점에서 민주적 정당성 확보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EU HLEG는 단순한 자문기구를 넘어 유럽정책의 방향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하며, 해당 구조는 글로벌 거버넌스 모델로서의 이식가능성 및 학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는 기술, 윤리, 금융, 사회문제 등 복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통합적 전문가 네트워크로서, 향후 전 세계적 정책 설계의 표준화 방향으로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NEOP/X